부모의 고민 : 7살 우리 아이. 아직 한글을 몰라요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았습니다. 바로 자녀에 대한 고민이었는데요. 아직 한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인의 아이는 7살이었습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글을 모르니 걱정이 많았던 것이죠.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인데, 걱정이 많아요. 우리 아이가 한글을 전혀 모르는거에요. 또래 주변에 아이들을 보면 모두 한글을 읽는데, 우리 아이만 뒤늦은 것 같아서 정말 걱정이 많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아이는 남자 아이였는데요, 아무래도 한글을 전혀 모르다보니 부모로서는 걱정이 많이 들 수밖에 없던 것이죠. 이런 고민 상담을 들을 때, 저는 사실 답을 쉽게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와 가정마다 모두 상황이 다르고, 어려움이 다르기 때문이죠. 똑같은 7살에, 모두 한글을 모른다고 할 때에도 처한 상황이 다르고, 결국 한글을 읽지 못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첫번째 질문을 고민 요청을 한 지인에게 던졌습니다.
질문 1 : 지금 어느 교육기관에 다니나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아이가 어떤 교육기관에 다니는가 입니다. 보통 7살 자녀를 보낼 곳은 정해져있습니다.
- 유치원
- 어린이집
- 홈스쿨링
이렇게 세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구요.
유치원은 다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 단설 유치원
- 사립 유치원
이것은 설립 주체별로 나누는 것인데요. 사립 유치원도 사실은 더 세분화시킬 수 있습니다.
- 일반 교과과정 (일반 유치원 - 누리교육과정)
- 영어 중심 교과과정(영어 유치원)
- 놀이 중심 교과과정(놀이 유치원)
보통 일반적으로 다니는 유치원이 있고, 영유라고 불리는 영어 유치원과 놀이학교라도 불리는 놀이 유치원이 있습니다. 영어 유치원과 놀이 유치원은 대개 100만원 이상의 학비를 지불해야 하는데요. 그 이유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식 유아교육기관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즉 학원에 가까운 개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곳은 단설 유치원, 병설 유치원, 사립 유치원(영어 유치원과 놀이 유치원 제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치원은 그 숫자가 제한적이고, 대부분 추첨식으로 뽑기 때문에 가고 싶다고 모두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5,6,7세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보내는 학부모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교육부 소속 기관이 아닌 보건복지부 소속 기관입니다. 그러다보니 교육보다는 보육의 개념이 크구요. 교육보다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누리교육과정입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육과정, 커리큘럼을 맞추자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인데요. 그러나 아무래도 태생상 어린이집의 교육과정은 유치원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최근에 어린이집 교육과정도 상당히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집의 규모가 커질수록 유치원에 비해 손색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유치원에서 수준이하의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도 있고, 어린이집에서 영어유치원 이상의 영어 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직접 부모가 경험하고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쨋든 이런 상황이기에 저는 먼저 아이의 교육기관을 묻습니다. 오늘 고민 상담을 한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유치원에서는 6살부터 한글 교육을 지속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육기관에서 한글을 미리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한글을 하지 못하니 더욱 걱정이었던 것이죠.
질문 2 : 아이가 한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보이나요?
그래서 두번째 물은 질문은 아이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말과 달리 글은 아이의 호기심이 더더욱 필요한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유아기의 말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살아야 하니까 말을 해야 하는 것이죠. 맘마, 밥, 쉬 등 모두 생존과 직결된 언어이고, 살기 위해서 말은 무조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글은 다릅니다. 과하게 말하면 어릴때 글을 몰라도 전혀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아이가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과 글의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내적 동기, 흥미, 관심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아이는 글을 배웁니다.
대부분 아이가 글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는 천차만별인데 보통 5살 전후입니다. 이때부터 자기 자신 주변에 보이는 글에 관심을 보이는데요. 바로 수많은 사인(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뭐야라는 질문인거죠. 이때 아이에게 다양한 인쇄물(책 등)을 제공하고, 접하게 해주면 아이들은 나름대로 글을 읽습니다. 아직 한글을 배우지 않았어도 읽죠.
아마도 한글을 모르는 자녀에게 그림책을 보여준 부모라면 아실텐데요. 말은 할 수 있고, 글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책을 보는 아이. 그러한 경우에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보면서 글을 지어냅니다. 자기 마음대로 글을 읽는 것이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다보면 어느새 아이는 글을 배우고 싶어하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먼저 아이에게 한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행되어야지, 가르치는 것을 먼저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질문하고 나서, 다시 지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부모의 질문 : 초등학교 가서 한글을 배워도 괜찮을까요?
억지로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한 제 지인은 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한글을 몰라도 괜찮을까요? 초등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워도 괜찮을까? 늦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만 모르고 가면 뒤떨어지는 거 아니야?
정말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저에게 말했는데요. 우선 제가 답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학생이 한글을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입학하면 한글을 배운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글을 만약에 모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에요. 담임선생님께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한글을 가르칠테니까요.
이렇게 답하고 부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1학년은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요. (국어, 수학, 사회 이렇게 따로 교과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런식으로 각 과목을 통합해서 하나의 교과서로 배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은 결국 한글로 적혀 있다는 것이죠. 즉 처음에 입학을 하면 학교 생활과 규칙도 배우고, 더하기 빼기도 배우는데 모두 한글로 설명합니다. 그러니 한글을 모르는 경우 이러한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수 있죠.
분명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육과정은 한글을 모르는 것을 전제하지만, 다른 과목의 교육과정은 한글을 아는 것으로 전제하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한글을 모르면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읽느라 모든 지적 능력을 쏟게 되고, 그러다보면 다른 배움을 처리한 인지적 역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죠. 글을 더듬더듬 읽으면, 더 깊이 있는 사고처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지 역량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청킹이라고 합니다.)
결론 지으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알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 3 : 그래서 7살 한글 모르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요?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독자들이라면 그래서 어쩌라는거냐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제 지인도 저에게 그렇게 물었으니까요. 억지로 가르쳐서도 안된다. 그런데 초등학교 가기전에 한글을 배우고는 가야 한다. 당장 6개월뒤면 8살이고 초등학교 입학인데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하면서 걱정했습니다.
저는 이런 걱정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걱정하지 말라는 말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쉬운 글자입니다. 한국어가 어렵지, 한글은 너무 쉽습니다. 세종대왕께서 가장 과학적으로 만든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정인지 서문에서 말하길 (약간 의역에 과장해서)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 지라도 반나절이면 배울 수 있다고 했을 정도라 했습니다. 그만큼 한글은 익히고 배우기 쉽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말을 유창하게 하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점검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유창하게 표현할 수 있기만 하다면, 언어 활동을 잘한다면 한글은 한달 이내에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아이가 아직 배울 마음이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더디 보이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도 아니고, 한국입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수많은 한글에 노출이 됩니다. 쉽게 노출되는 환경이기에 한글을 얼마든지 볼 수 있죠. 노출도 충분하고, 배우기 쉬우므로, 정말 아이의 마음만 생기면 금방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아이에게 한글을 알고 싶어하는 관심을 먼저 갖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한글에 대한 관심유발은 그림책이 가장 쉽고, 적확하며 유용합니다. 아이와 직접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보고 싶은 그림책을 선택하게 하세요. 아주 쉬운 내용도 좋고, 무엇이든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을 함께 읽는 것, 이러한 활동을 조금씩 함으로써 아이가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4살때 로보카 폴리나 뽀로로 같은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의 그림책을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만화 원작 그림책으로 시작해서, 점점 다양한 그림책을 접하게 했더니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림책을 자주 보다보니 글을 읽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한글이야호라는 EBS 한글 교육 영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마침 유치원에서 한글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을 했습니다.
결론 :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입니다.
- 그림책 등을 활용해서 한글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한 다음
- EBS 한글이야호 교재와 영상으로 가정에서 한글 교육을 하고,
- 교육기관(유치원, 어린이집)에서 한글 교육을 병행
이렇게 3단계 과정으로 아이의 한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지금도 자녀 한글 교육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 예를 들면 가정 방문 한글 교육을 하시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고, 고가의 유아학교 등을 보내서 한글 교육을 하시는 부모들도 계실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아이에게 억지로 한글을 가르치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먼저 한글을 좋아하도록, 한글 노출 상황을 많이 만들어주고, 아이가 한글을 좋아하게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조차 틀렸다고 생각한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말라. 대신에 바다를 사랑하게 만들라.
그렇습니다. 자꾸만 우리는 무언가 아는 개념적 지식, 혹은 무언가 할 줄 아는 방법적 지식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심과 흥미, 내적 동기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 아이일수록, 유아일 수록 이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아이가 한글을 모른다, 즉 결핍이나 단점에 초점을 맞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우리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몰입하는지를 생각하고 관찰하기 바랍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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