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학생의 감정부터 챙기자
오늘은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중요한 키워드인 학생의 감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학생(학습자)이 어렵거나 낯선 지문이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보고, 그 감정이 학습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이 처음 자신이 선택한 전문교과(전공과목)에 관한 수업을 듣고, 학습을 할 때 대개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이를 통해서 직업계고 학생들 중 20~30% 정도 비율을 차지하는 기초학력부진 학생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학습에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감정을 놓치고 마는데요. 학생을 기계처럼 인식할 때 이런 오류가 생겨나곤 합니다. 동시에 학생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이런 일이 생겨나곤 하는데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요즘 우리에게 꽤 익숙한 말입니다. 열심히 밑줄을 긋고 책장 모서리를 접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켜켜이 쌓인 보고서 뭉치와 씨름하고 꼬리에 꼬리를 문 이메일을 훑어 내려가도 읽고 있는 글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머릿속에 잡히지 않습니다. 종일 읽어도 선명하게 남는 것이 없을 때 마음은 찜찜하고 개운치 않습니다. -조병영,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게 하라, 157p
여기서 중요한 문장이 바로 ‘마음은 찜찜하고 개운치 않습니다’입니다. 마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나온 마음 모두들 한번쯤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계속 신경쓰일 것입니다. 당연히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겠죠.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다음 지문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절차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 먼저 물건을 서로 다른 더미로 정돈한다. 물론, 정돈할 것이 많지 않으면 한 더미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설비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그렇지 않으면 준비가 거의 다 된 셈이다. 도를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한 번에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한 번에 좀 적다 싶을 정도로 작게 하는 편이 낫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쉽게 꼬일 수도 있다. 한 번 실수로 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 모든 절차가 꽤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이 일도 곧 일상생활의 또 다른 일부가 되고 만다.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곧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절차가 끝나면 이들 물건은 다시 서로 다른 더미로 정돈된다. 그러고 나면 이것들을 적절한 장소에 집어넣을 수 있게 된다. 이것들이 다시 한 번 사용되고 나면 이 모든 절차는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이것도 일상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Bransford & Johnson, 1979. p. 430
위 글을 읽어보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분명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글을 읽을 때 무언가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이 생깁니다. 계속 신경쓰이죠. 이런 감정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읽는데, 학습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니 더더욱 악순환이 생겨납니다.
인간의 뇌 속에서 학습이 일어나려면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긍정적 감정 상태’다. 인간의 뇌는 크게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의 뇌(thinking brain), 불쾌한 혹은 유쾌한 경험을 처리하며 위아래로 정보를 전달하는 스위치 기능을 갖는 감정의 뇌(feeling brain), 호흡·맥박·혈압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생명의 뇌(survival brain)처럼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특히 감정의 뇌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학습으로 가는 온·오프 스위치’라고도 한다. 따라서 ‘학습이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감정 상태를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유지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만성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동료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며 수업 중 허접한 질문이나 실수를 해도 창피당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은 학습의 최대 적이다. 부끄러움을 타는 학생, 남 앞에서 질문하기가 두려운 학생들이 원격수업에서는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곧잘 질문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글에서처럼 학생의 긍정적 감정 상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학습이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감정 상태를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유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낯선 지문, 이해하기 어려운 글(지문)을 읽는다면 어떨까요? 당혹스러우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학 어려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만약 직업계고 학생들이 처음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고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습이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학습이 일어나려면 학습자의 감정을 긍정적인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학습결손이 발생되면 점점 더 학습결손은 누적되게 됩니다. 지금 모르면 그 다음 수업시간에도 모를 확률이 커지는 것이죠. 이를 매튜효과(마태효과)라고 합니다. 학습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학습자를 대개 학습부진 학생 또는 기초학력 부진학생이라고 우리는 부르게 됩니다.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Ⅳ)’(김태은 외 2020)>에 따르면 학습부진학생은 “알아야 할 필요를 모르는” 상태에 있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지도하여도 학력 수준의 변화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목표는 학습부진학생의 교육적 성장은 학업성취도나 행동방식, 정서적 태도 등 특정한 영역에서 가시적인 변화에 국한되지 않고, ‘학습하고자 하는 성향’이 형성되었는가 여부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결국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학생에게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기초학력 부진 학생은 학습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습부진 학생은 기초학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필요를 모르는’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학습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목표는 학습부진학생의 교육적 성장은 학업성취도나 행동방식, 정서적 태도 등 특정한 영역에서 가시적인 변화에 국한되지 않고, ‘학습하고자 하는 성향’이 형성되었는가 여부에 두어야 합니다.
직업계고 1학년, 첫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의 감정은?
직업계고 학생들은 입학 전에 자신의 전공을 선택합니다. 전문교과라고도 하는데요. 전공 과목 혹은 전문교과 수업을 듣는 직업계고 학생들, 물론 직업계고 학생들이 입학 전에 관련 전공 공부를 미리 조금이라도 해오면 도움이 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건축이나 기계, 혹은 요새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프트웨어 SW 개발이나 코딩, 디자인과 같은 다양한 전문 교과, 전공과목을 입학 전에 미리 학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흔히들 말하는 보통교과, 즉 국어, 영어, 수학이나 사회, 과학 같은 어느 정도 연속성을 지닌 과목들을 지속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직업계고 1학년 학생들은 더이상 연속성이 없는 그러니까 매우 낯설고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전문교과, 전공교과 수업을 듣게 됩니다.
당연히 배경지식도 없고요. 다시 한번 학습이 일어나기 위한 선결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학습이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동기를 바탕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의미 있는 정보일 것’, 다른 하나는 ‘이해가능한 정보일 것’이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에게는 대부분의 수업 내용이 의미 있지도 않고 이해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런 학생에게는 학습이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의 뇌는 어떤 정보를 이해할 때 사전 지식이나 배경 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는 새로운 정보와 가장 유사한 정보를 과거 기억 속에서 찾아 패턴을 비교함으로써 가능한데,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이해 속도가 느려 만성적으로 인지 과부하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의미있는 정보여야 하고 동시에 이해가능한 정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직업계고 1학년 학생들이 처음 만나는 전문교과, 전공교과는 취업을 위해서 의미있을 수는 있지만 이해가능한 정보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직업계고의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전문교과를 선택하면서,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자신의 읽기 수준보다 훨씬 어려운 글을 접했을 때 낯섦과 당혹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진에 대한 접근은 이러한 난처함과 좌절감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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